전북 순창에는 사이좋기로 소문난 고부가 있다. 바로 한 지붕 아래 산 지 36년이 되었다는 시어머니, 조순이(86) 씨와 며느리, 한양님(67) 씨 가족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시어머니, 조순이 씨와 칠순을 코앞에 둔 며느리, 한양님 씨가 한집에서 동고동락한 지도 올해로 36년이다.
둘째 아들은 6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며느리는 그대로 시어머니 곁에 남았다. 세상 어려운 게 고부지간이라는데, 이 집은 조금 남다르단다.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날마다 새벽 산책도 같이하고 장날에는 손 붙잡고 읍내 나들이, 밭일할 때도 착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단둘만 사는 데다, 밭에 갈 때나 장에 갈 때,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늘 함께하는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바늘과 실’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할 정도다. 며느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엄니, 사랑해요” 뽀뽀를 하고,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잡아주고 밀어주고, 신발까지 신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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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며느리 대신 손수 음식을 하고, 철철이 한약도 지어 먹인다. 이렇게 애틋한 고부지간이 되기까지, 시어머니 조순이 씨는 눈물깨나 흘렸다. 사실 며느리는 지적 장애 2급이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를 둔 시어머니 순이 씨라고 한다. 그중 기골이 장대하니 생긴 것도 제일 잘생겼던 둘째 아들이 지적 장애가 있었다.
그렇게 내 아들이 모자라니 어쩌겠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며느리를 얻어야지. 지인에게 소개받아 서울에서 식모살이하고 있던 양님 씨를 데리고 왔다. 양님 씨는 얼굴에는 큼지막한 사마귀가 있었고, 잔뜩 움츠러든 구부정한 자세에 사람들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폐결핵까지 걸려있었는데 지극정성 약해 먹이고, 살뜰하게 보살핀 덕에 지금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찾게 되었단다. 조금 부족해도 가르치면 되겠거니 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일러주는 데도 매일 사고만 쳤다. 그러니 예전에는 ‘너만 없으면 살겠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는데, 요새는 며느리 없으면 못 살겠단다.
일흔을 앞둔 나이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양님 씨와 그런 며느리와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 애쓰는 시어머니 순이 씨는 서로가 서로에게 목숨 같은 존재가 되었다. 몇 년 사이, 허리 수술에 다리 수술까지 한 시어머니, 순이 씨는 보행기가 없으면 몇 발짝 걷는 것도 버겁다.
거친 숨을 내쉬며 일어나려는 시늉만 해도 며느리는 어느새 달려와 부축해 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잽싸게 보행기를 대령한다. 그렇게 시어머니의, 순이 씨의 ‘손발’이 되어주는 며느리이다, 양님 씨.며느리는 고추 널고, 깻단 옮기고. 말하는 대로 착착 움직여 준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다리’라면,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머리’ 칠순을 바라보지만, 돈 계산도 할 줄 모르고, 때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며느리, 그 옆에 딱 붙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 돌보듯, 살뜰하게 챙겨준다. 고부지간이 살가우니, 제일 마음이 놓이는 건 대처로 나간 자식들이다.
형수님이 최고라며 철철이 맛난 것 사 들고 찾아오고 올 때마다 농사일도 돕고, 집안 곳곳 손봐주고, 콧바람도 쐬어준다. 그러다 다들 제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곁에 남은 건 며느리뿐이다. 엄니가 죽으면 어쩌나, 저녁만 되면 눈물이 난다는 며느리, 그리고 그런 며느리가 짠해서 또 눈물을 흘리는 시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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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며느리는 달걀 하나 붙이라면 소금을 들이붓고, 설거지하겠다더니 그릇을 물에 담갔다 빼는 수준이다. 그러니 며느리 뒤를 쫓아다니면서 여전히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속이 상해서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 너를 만났을까’ 가슴을 두드리면 ‘어머니 아프니까 나를 쳐요’ 손을 잡아 끄는 며느리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지만, 놓을 수가 없는 농사 욕심에 올해도 고추를 심고, 깨도 심었다. 몸이 성치 않으니, 며느리한테 맡기면 편할 테지만 혼자 내보낼 수는 없다. 고추 좀 거두라면 다 익지도 않은 고추를 따 버리질 않나 깨밭에 나가선 여물지도 않은 깻대를 벤다.
그래도 묵직한 고추 포대를 번쩍 들어 옮기고 마당에 깻단을 펼쳐주는 것도 며느리다. 마을 회관에서 잔치가 있던 날엔 졸리다고 먼저 집에 간 며느리가 데리러 오지도 않는구나, 서운해하면서 집에 갔더니 고구마 순 껍질을 다 벗겨놓았다. “엄니 다리 뻗고 껍닥 벗기려면 힘들잖아요” 언제 이렇게 속이 꽉 찼다.
새삼 기특하고 짠한데 요샌 저녁만 되면 엄니 돌아가실까 봐 눈물이 난다며 “엄니, 죽지 마요”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나란히 앉아 좋아하는 일일연속극을 보면서 ‘하하 호호’ 웃다 보면 우리 며느리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가슴이 철렁한다. 6남매 중 속을 태웠던 둘째 아들 빼고는, 모두 버젓하게 자리를 잡았다.
형수님한테 고맙다며 철철이 맛난 것 사 들고 집으로 찾아오는 자식들은 어머니를 위해서는 고추밭에 줄도 매주고, 농약도 뿌려주고, 시원한 계곡으로 모시고 가 콧바람도 쐬어준다. 그러다 다들 제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곁에 남은 건 며느리뿐이다.
복작이던 집에, 덜렁 단둘이 앉아있으면 혼자 남겨질 며느리 걱정이 또 불쑥 올라온다. 숫자도, 셈도 모르는 며느리가 그래도 돈 계산은 할 줄 알아야지 하는 생각에 천 원짜리 만 원짜리 펼쳐놓고 가르쳐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가 아프다며 냅다 도망가 버린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들딸들이 착하고 우애가 있어서 형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올케언니랑은 내가 살겠다고, 안심을 시켜준다. 그러니 고민은 내려놓고, 해맑은 며느리랑 오붓하게 살아야지 여름 끝자락, 봉숭아꽃 따다가 물도 들여보고 쑥물 끓여서 나란히 앉아 욱신거리는 발도 담가본다.
그렇게 황혼 녁을 함께 보내는 고부지간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목숨 같은 존재가 된 두 여인, 순이와 양님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본다.
(출처: KBS 인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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