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아들, 아랫집 어무이. 오늘은 뭘 같이 먹을까요?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고즈넉한 선비의 고택, 1666년에 지어졌다는 지역 문화유산인 만월당은 정외상(61세) 씨의 어린 시절 추억이 머무는 특별한 공간이다. 진양 정씨 후손으로 만월당을 지키며 사셨던 외상 씨의 부모님은 병환을 얻고 고향 집을 떠났다.
만월당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뒷집에 자리한 외상 씨의 본가는 십수 년간 폐가로 변했다. 부모님 삶의 흔적이 가득한 고향 집을 포기할 수 없었던 외상 씨 부부는 1년에 걸쳐 손수, 옛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그런데 폐가가 수리되고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은 바로 뒷집에 사는 김귀연(76세) 씨란다.
초원식당
경상남도 거창군 중앙로 140
전화번호: 055-945-8245
한국인의 밥상 영동 봉곡리 민물매운탕 연잎밥 투망의 달인 여씨 장씨 집성촌 황곡마을 단호박설기
마을 초입이지만 딱 두 집이 만월당과 나란히 이웃한다. 집을 수리하고 이웃으로 살기까지 밑반찬을 나르며 어머니처럼 외상 씨 부부를 보살펴 줬다는 귀연 씨, 멀리서 사는 자식 대신 다정한 앞집 아들이 되어준 외상 씨 서로가 부모, 자식이라는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만월당
경상남도 거창군 덕유월성로 2279-6
이제는 외상 씨의 ‘어무이’가 된 귀연 씨. 매일 앞뒷집을 오고 가며 함께 밥상에 둘러앉는 것이 일상이 됐다. 앞집 아들, 외상 씨와 뒷집 어머니, 귀연 씨가 그 옛날 외상 씨 어머니 친구분들을 초대하여 ‘밥정’을 나눈다.
명절이면 약속이 없어도 한데 모일 수밖에 없는 고향 친구들! 족대를 둘러메고 유년 시절 놀던 1급수 월성계곡에서 이맘때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퉁가리와 다슬기를 잡는다. 퉁가리는 명절날 아버지가 술안주로 즐겨 드시던 퉁가리어탕수로 만들고, 다슬기는 뒷집 어머니 귀연 씨가 갓 수확한 햇사과를 넣어 다슬기 초무침을 만든다.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올렸다는 쓸개즙에 재운 곱창구이에는 등 너머로 배운 귀연 씨 어머니만의 비법이 담겼다. 어탕수제비와 궁합이 딱 맞는 장자젓(대구아가미젓)깍두기도 이 지역의 별미다. 생선 구하기 힘든 내륙지방이라 대구 한 마리를 구해오면 아가미까지 알뜰히 사용하여 젓갈을 담근 거창 지역의 향토 음식이 ‘장자젓깍두기’다.
외상 씨의 친구들까지도 친아들처럼 대하는 귀연 씨는 아들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 더 즐겁기만 하다. 앞집 아들, 뒷집 어머니가 말 그대로 사촌보다 가까운 가족이 된 두 집의 한가위 풍경을 들여다본다.
(출처: 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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