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순창군 해발 350m 내장산 자락의 작은 산골 마을에 흥에 살고 흥에 죽는 가족이 있다. 바로 홍진기 씨(51) 가족, ‘홍 씨네’다. 이른 아침부터 산골 마을 외딴집에서는 흥겨운 풍물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빠 진기 씨와 엄마 희경 씨(46)는 풍물을, 첫째 유경이(16)는 가야금, 둘째 유민이(13)는 해금, 막내 세영이(11)는 판소리까지 그야말로 국악으로 하나 된 ‘국악 패밀리’다. 대학 시절 풍물로 만난 부부는 청춘에 취미로 시작한 풍물은 평생의 업이 됐다.
홍 씨네가 순창으로 오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진기 씨의 오랜 꿈이었던 예술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진기 씨가 국악 하는 것을 반대하셨던 부모님은 어디 한번 꿈을 이뤄보라며 운영하던 식당 건물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내장산 자락 산골 마을에선 매일 같이 흥겨운 풍물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기 씨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화합하고 우리 소리를 널리 알리고 싶어 마을의 오랜 풍물단을 더욱 키우고, 동네 아이들에게 풍물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 들어 홍 씨네 가족은 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매해 가을, 홍 씨네 마당에서 열리는 <알음알음 산골 음악회> 때문이다. 바로 주민들과 우리 음악을 즐기고 싶어 오롯이 자비로 시작했던 마을잔치다.
처음엔 이름처럼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던 잔치는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지자체의 후원도 받으며 10주년을 맞았다. 무르익어가는 가을날, 신명 나게 노는 홍 씨네 가족을 만나본다. 이른 아침, 내장산 산골 마을 외딴집에서 구성진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마을 사람들이 국악을 알고, 함께 즐겼으면 하던 진기 씨는 마을 어르신부터, 외국에서 시집온 며느리,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풍물단에 함께하며 남녀노소 풍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우리에겐 음악이지만, 이웃에겐 소음일까 싶어 작게나마 맛있는 음식 대접하던 소소한 잔치가 이제는 지자체에서 지원받을 정도로 큰 마을 축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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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홍 씨네 세 자매의 국악 합주 소리다. 순창에서 소문난 ‘가야금 신동’으로, 서울에서 유학 중인 첫째 유경이와 어릴 때부터 해금과 놀며 자란 둘째 유민이, 욕심 많은 당찬 소리꾼인 막내 세영이까지 세 자매는 순창에서 ‘국악 자매’, 이른바 ‘홍 자매’로 통한다.
세 딸이 모두 국악을 하게 된 건 풍물 강사이자, 공연자인 부모님 덕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소리와 함께 자란 세 딸은 자연스럽게 국악에 빠져들었단다. 그런데 아빠 진기 씨는 요즘 고민이 있단다. 사랑하는 국악을, 사랑하는 세 딸과 함께하니 더없이 좋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막내 세영이가 한 번 공연할 때마다 북 치는 고수를 고용하는 비용은 무려 30만 원으로, 강사 수입으론 벅차기만 하다. 결국, 진기 씨가 직접 북 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진기 씨는 세 딸에게 못 해주는 것이 많아 미안하기만 하다. 고즈넉한 산골 마을 외딴집. 매일 국악을 연습하기엔 더없이 좋지만,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세 자매도 불만이 있단다.
버스는 한 시간에 고작 한 대뿐, 택배도 1주일씩 걸리기 일쑤다. 배달 어플을 켜봐도 ‘텅’이라는 한 글자만 나온다. 아이들의 소원은 높은 건물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거라고 한다.
시끌벅적 홍 씨네의 산골 라이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추석 명절 온 집안 여자들이 전 부치기 바쁜 와중, 진기 씨는 혼자 두 다리 뻗고 태평하게 안마의자에서 쉬고 있다. 진기 씨의 어머니가 아들이 편히 있는 걸 좋아하셔서란다. 어머니는 나이 오십이 넘은 아들인데도 여전히 불면 날아갈까 노심초사다.
귀한 아들밖에 모르는 어머니지만, 한때는 그런 아들과 인연을 끊고 살았던 세월도 있었다. 학창 시절 반듯한 모범생이었던 진기 씨는 한의사가 될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장구재비’가 되겠다 했다. 그 시절만 생각하면 어머니는 여전히 가슴이 턱 막힌다.
대학에서도 국악을 전공하며, 집 떠나 10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던 진기 씨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세월이 한참 흘러 어머니는 결국 두 손 들고 진기 씨의 뜻을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준비한 마을 축제를 잘 끝내고 각자의 악기들을 챙겨 어디론가 떠나는 홍 씨네는 왠지 모르게 다들 얼굴에 긴장이 역력하다.
알고 보니 가족들의 오랜 꿈이었던 첫 번째 ‘국악 버스킹’ 날이다. 마을 사람들과 화합을 위해, 우리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홍 씨네 가족만을 위한 ‘산골 음악회’가 펼쳐진다.
(출처: KBS 인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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