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수(57) 씨에게 찾아온 시련은 8년 전, 아내 강지연(57) 씨가 암을 선고받은 일이었다. 젊은 시절, 기수 씨는 결혼은 안중에 없는 독신주의자였다. 산을 사랑하고 암벽등반을 즐겨 수중에 돈이 생기면 세계 곳곳의 산을 누비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 여겼다.
그런데,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운명인지, 마흔네 살 늦은 나이에 동갑내기 모임에서 지연 씨를 만났고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 분모로 친해진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른다. 또한 기적처럼 품에 안은 딸이 겨우 다섯 살인데 아내가 완치율도, 생존율도 낮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늦게 만났지만, 삶의 전부가 된 아내를 살리기 위해 기수 씨는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을 했다. 거제도 조선소에서 특수직으로 일하던 기수 씨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투병하는 아내 곁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 밑에 집을 짓고 아내 살리기에 나선 기수 씨는 항암치료를 하는 아내에게 텃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항암 음식을 먹게 했고 아내를 이끌고 집 주변 산에 오르는 건 기본, 암에 좋다는 건 다 시도하며 혼신의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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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방편도 없이 무작정 지리산으로 들어와서 닥치는 대로 일하다 보니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텃밭 농사에 요긴한 계분(닭똥)을 얻으려고 닭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 뜻밖의 돌파구가 됐다. 그렇게 아내의 회복만 보고 달려온 지 8년이 흐르고 꼭 살겠다고 다짐했던 지연 씨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무너졌던 가족의 일상도 되찾았다.
위험한 공중작업에서 실력을 발휘해서 외국 회사와 원하던 연봉에 좋은 조건으로 일하기로 했는데, 출국을 두 달을 남겨놓고 지연 씨가 암 선고를 받았다. 당장은 아내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여겨 앞뒤 재지 않고 사표를 내고 무작정 산골로 들어왔다. 예고도, 대비도 없었기에 생계가 막막했다. 부르는 곳이 있으면 허드렛일이라도 달려갔었다.
돌파구는 뜻밖에도 아내를 위해 기르기 시작한 닭에 있었다. 아내에게 먹일 항암 식품을 물색하다가 마늘 농사를 시작한 기수 씨는 계분이 좋다고 해서 먼 곳까지 가서 얻어오다가 아예 직접 닭을 키우기 시작했다.
항암 효과를 기대한 터라 항생제며 약은 쓰지 않고 사료도 좋은 것만으로 직접 만들어서 먹였는데 그 닭에서 나온 달걀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생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기수 씨의 달걀은 좋기로 소문이 나서 잘 팔려나간다. 손님이 부탁해서 만들기 시작한 난유도 수입원 중 하나이다.
직업을 바꿨고, 사는 곳도 달라졌으며 무엇보다 행복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당연하다 여겼던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고 건강하다면 어떤 시련도 이겨내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래서 기수 씨는 지금이 행복하고 지나온 시간이 감사하다. 새로 생긴 꿈도 한 없이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저 지금처럼 산자락에 묻혀 살다가 아내보다 하루 먼저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가 화려한 행복을 좇는 세상에서, 시련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은 기수 씨와 가족들이 만들어 가는 보석 같은 일상을 찾아가 보자.
(출처: KBS 인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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