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와 전기로 손쉽게 열을 얻기 전까지 아궁이는 맛의 원천이었다. 장작을 쪼개 불을 붙여야만 찌고, 끓이고, 구울 수 있었다. 그뿐일까, 고래를 타고 퍼져나가는 아궁이 불의 열기는 구들을 달궈 방까지 따뜻하게 해줬다. 한편 아궁이 앞은 어머니들의 해우소이기도 했다.
설운 일일랑 불 속에 던져두고 나오는 눈물은 매운 연기 탓을 하며 넘겼다. 불 한 번 피우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었으니 그 옛날 어머니들이 아궁이를 애지중지한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맛과 이야기가 있는, 아궁이 앞 풍경으로 떠나본다.
추억의 맛을 부르는 아궁이 충청남도 태안군
한적한 시골길, 논두렁을 따라 좁은 길을 지나면 논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집 한 채가 나타난다. 대문이며 마루며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있는 이 집은 한창 변신 중이다.
태안 게국지
한국인의 밥상 평창 황토구들마을 비지장 메밀면 느릅나무껍질 황태구이 수수괴기 홍종월 가마솥아궁이
바로 4대째 이 집에 살고있는 집주인 이상암 씨 덕이다. 서울에 살던 그가 긴 타향살이를 접고 고향 집으로 돌아온 것은 어릴 적 대가족이 함께 살던 추억을 잊지 못해서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손수 집을 고쳐나가는 중이라는 이상암 씨. 가장 신경 쓴 공간은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다.
할아버지가 쇠죽을 쑤던 아궁이를 그대로 살려 고풍스러우면서도 멋스러운 거실로 꾸며냈다. 덕분에 가족들이 모이는 곳도 바로 여기 외양간이라고 한다. 길 건너 사는 작은어머니, 김춘 씨 역시 한 때는 아궁이 앞 단골손님이었다.
시집오자마자 농사일과 집안일에 치여가며 냉가슴을 앓을 때 위로해주던 것이 바로 이 아궁이였다. 밥 지을 때마다 대신 울어주는 가마솥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는데. 그래서인지 모내기 철에 새참으로 자주 끓이던 김칫국은 여전히 가마솥에 넉넉히 끓이는 것이 제일이란다.
가마솥 밥을 지을 때면 꼭 쌀 위로 뚝배기를 올려 반찬까지 같이 마련하곤 했다. 간장게장 국물로 무쳐낸 배추를 게, 민물새우와 함께 뚝배기에 담아, 뜸 들일 때 솥에 넣고 푹 익혀내면 충남의 향토음식 게국지가 완성된다.
손수 홍두깨를 밀어 밀국이라 부르던 칼국수까지 만드니 온 식구가 한 방에 모였다. 따뜻한 구들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것만으로 다 같이 살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는데. 아궁이가 있어서 되새길 수 있는 추억을 만나본다.
(출처: 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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